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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자소서도 글쓰기다

"시간이 없어요." 

"언제 그걸 다 써요. 20개나 써야 하는데.." 

"야, 그냥 괜찮은거 하나 쓴다음에 복붙해~ 

어차피 될놈될이야~"


스토리도 있어야 하고. 감동도 있어야 하며. 동시에 실력(스펙?)까지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수많은 취준생들은 500자 혹은 1000자 안에 20년 인생을 우겨넣고 있다. 쉬운 일 일수도, 너무 어려운 일 이기도 하다.


3년 동안 회사 안팎에서 만난 대학생이 200명을 넘어섰다. 우연치 않게 약 천명이 넘는 자소서를 볼 기회가 있었고. 친한 취준생들 부탁으로 100개가 넘는 자소서 첨삭을 했다. 모 학교 앞 카페에서 생판 모르는 학생을 만나 인생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다양한 자소서 첨삭 경험에서 얻은 인사이트는 세 가지.


▶첫째, 글을 재미있게 못쓴다. 

(좋은 스토리를 가지고 왜 이렇게밖에 못 썼지? 아쉬움이 너무 크다)


▶둘째, 복붙이 너무 많다. 

(질문을 잘 읽지 않고 자소서를 쓰는 듯 하다. '왜 이렇게 썼니?' 물으면 답은 늘 같다)


▶셋째, 퇴고를 하지 않는다. 

(재미는 없고 자기 자랑만 가득하다. 나 혼자 쓰고 나 혼자 평가하기 때문)


'도와주고 싶다.' 

내가 자글(자소서도 글쓰기다)을 시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끼는 후배들 때문이다. 어쩌다 얻어 걸린? 회사에서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거지?' 방황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많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복붙하다 얻어걸린 자소서'도 큰 비중을 차지할테다. 그래서 자소서부터 도와주고 싶었다. "네가 진짜 원하는 일에 정성을 다해서 도전해 보고, 안되면 그 다음에 복붙해도 늦지 않아"


그래서

▶다시 첫째, 자소서는 사실 글쓰기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자소서도 잘 쓴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이 글을 못쓴다. 평소에 많이 써보지 않아서다. 짧은 글과 해시태그에만 익숙한 친구들이 긴 호흡의 글을 잘 쓴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다. 실제로 고학력 친구들의 자소서도 많이 봤지만 다 비슷하게 못쓴다. 글을 쓰기 위해서 기본적인 것은 기획. 손가락 흘러가는 대로 쓰는 것은 일기나 메모장이고.. 글을 잘 쓰려면 기획을 해야한다. '이 질문에는, 나의 이런 스토리를, 이런식으로 구성해서, 독자(인사팀 담당자)의 마음을 사로잡겠다' 정도의 기획은 필수다. 그리고 쉽고, 짧게, 읽고 싶게 써야한다.


▶다시 둘째, 복붙은 하지 마라.

"세리야 정말 너가 가고 싶은 회사나 직무를 위해서 쓴 자소서면 나도 열심히 봐줄게" 자소서 첨삭을 부탁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부탁하는 한가지. 복붙한 자소서는 읽는 사람도 너무 불쾌하고. 첨삭해줄 것이 없다. 미래가 걸린 중요한 일에 '하나 정도는 얻어걸리겠지' 생각하는 것부터가 안타깝다. 그리고 혹여나 운 좋게 복붙 자소서가 통과해서 면접으로 넘어가도, 회사에 합격해도 자기 발목을 잡게 될 수 있다. 내가 생각했던 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소서는 매우매우매우 중요합니다. 그걸 기반으로 면접도 보고 부서 배치도 합니다. 표절하고 조금씩 바꾸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프로그램 돌리면 표절률 까지 다 나와요."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에게 본인이 직접 묻고 건네들은 들은 답변이다.


▶다시 셋째, 피드백을 받자.

자소서를 첨삭 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이 부끄러워하는 일이더라. "친구한테 보여주긴 부끄러워요. 사실, 저 친구가 말해주는게 맞나 싶기도 하고... 같은 처지에 있잖아요. 그렇다고 선배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쉽진 않죠.." 낯선 사람, 정말 내 자소서가 뭐가 잘못됐는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가능하면 좋은 자소서를 쓸 수 있는 방향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여태까지 만난 친구들은 이런 이유들로 나를 자소서 첨삭 선생님?으로 택한듯 했다. 


반응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합격했다고 감사 카톡을 보내는 친구들,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제 자소서를 어떻게 써야할 지 알겠다는 친구들, 이번 것은 어떻냐고 연락오는 친구들...


많이 뿌듯했고 보람찼다. 언론사에서 유스 마케팅 에이전시로 이직을 한 이유는 대학생들과 호흡하고 싶어서다. 호흡이란 표현이 거창하지만 함께 놀고 싶다는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고, 치고 박고.. 그러다가 정들고. 자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형, 오빠라고 부르는 아끼는 동생들 때문이다. 나중에는 많은 친구들이 이곳에서 웃고 떠들었으면 한다.


자소서는 결국 글쓰기다. 글을 잘 쓰면, 취직 후에도 분명 많은 도움이 된다. 

나를 거쳐가는 취준생들이 원하는 회사에서 좋은 앞날을 누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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